반대론자들은 무죄추정원칙과 피의자 인권보호를 논거로 들었다. 또 얼굴공개로 얻을 수 있는 사회적 실익이 없다는 것과 피의자 가족들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등 사실상의 연좌제로 기능할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찬성론자들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흉악범의 경우 피의자의 권리보다 공익차원에서 국민의 알권리가 우선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특히 자의 또는 타의에 의해 공적인물이 된 사람에 대해서는 프라이버시권보다 알권리가 우선된다는 ‘공적인물이론’을 근거로 들었다.
한편 강호순 사건을 계기로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사형수에 대한 집행요구에 대해서는 66.7%에 해당하는 20명이 반대입장을 보였고, 사형제도에 대해서도 63.3%에 해당하는 19명이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여 사형제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이 많았다.
◇ 무죄추정원칙, 알권리 두고 법학계 찬·반 팽팽= 응답자들은 얼굴공개와 관련해 무죄추정의 원칙과 알권리를 놓고 서로 상반된 입장을 보였다. 조한상 청주대 교수는 “무죄추정원칙에 따라 유죄가 확정되기 전까지는 얼굴이 공개돼서는 안된다”며 “가족과 주위 사람들에게까지 악영향을 줄 수 있는 얼굴공개는 자기책임주의에도 반한다”며 반대입장을 밝혔다. 정영화 서경대 교수는 “무죄추정원칙 외에도 가족들에 대한 인권침해문제, 심리적 압박으로 인한 격리, 연좌제 성격 등을 고려할 때 용납할 수 없다”며 “신상공개는 초동수사의 실패를 덮으려는 수사기관의 행태를 보여줄 뿐”이라고 강조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는 “범죄자라도 인권은 보장되어야 하며, 얼굴이 공개되더라도 피해자 구제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등 문제가 많다”고 우려했다. 김광성 원광대 교수는 “피의자 상태에서의 얼굴공개는 과거에도 악용되어 온 측면이 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있다”며 “얼굴공개로 형사사법상 이익이 있는 것도 아니므로 유죄가 확정되지 않는 한 얼굴을 공개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이준일 고려대 교수도 “극형이 예상되는데 굳이 얼굴을 공개해서 얻는 효과가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음선필 홍익대 교수는 “살인범은 국민의 생명권과 관련되고 이번 사건의 경우 자백 등 증거가 명확하므로 초상권과 피의자의 권리보다는 국민의 알권리가 더 중요시돼야 한다”며 찬성입장을 보였다. 민병로 전남대 교수도 “국민의 알권리와 공익성이 우선돼야 하며, 본인이 이미 자백을 했고 증거가 명확하므로 무죄추정의 원칙에 반하지 않고 초상권 침해도 아니다”고 말했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는 “이 문제는 피의자의 초상권·프라이버시 및 피의자 가족의 프라이버시권과 일반 국민들의 알권리가 충돌하는 사안”이라며 “서구 선진국들은 자의 및 타의에 의해 공적인물이 된 사람에 대해서는 알권리가 우선한다는 ‘공적인물의 이론’ 등 판례이론을 형성해 왔으며 이에 비춰보면 이번 사건은 얼굴공개가 가능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설명했다. 도회근 울산대 교수는 “미국에서는 제한적 공익이론에 의해 유명인사가 된 피의자의 얼굴을 공개한다”며 “우리나라는 피의자의 권리를 두텁게 보호하는 측면이 있지만 점차 공개돼 가는 경향에 있다”고 말했다.
◇ 법원 범죄자 실명·얼굴공개에 엄격한 해석= 법원은 범죄사건의 실명보도에 대해 엄격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익명보도를 원칙으로 하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실명보도를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범죄와 범죄인을 분리해 ‘범죄’보도의 공공성을 인정할 수 있다고 해서 ‘범죄인’보도의 공공성까지 인정할 수는 없다는 판단이다. 다만 공적인물이 범죄를 저지른 경우나 기사 작성상 신원을 밝히지 않고 사실 특정이 곤란한 경우, 범인검거의 필요성이 인정되는 경우 등에 한해서는 실명보도가 허용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또 유죄판결이 확정되지 않은 경우에는 그 혐의를 사전에 보도해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거나 범행에 다툼이 없는 경우에 한해 허용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사건이 고도의 해악성 혹은 비범성을 가진다는 이유만으로 실명보도가 허용돼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법원 판례는 “대중매체의 범죄사건보도는 공공성이 있는 것으로 취급할 수 있으나 범죄자체를 보도하기 위해 반드시 범인이나 범죄혐의자의 신원을 명시할 필요는 없다”라며 “(범죄를 저지른) 원고들이 공적인 인물이 아닌 이상 일반 국민들로서는 범죄를 저지른 범인이 바로 원고들이라고 하는 것까지 알아야 할 정당한 이익이 있다고 할 수 없다”고 밝히고 있다(96다17257).
‘공적 인물’의 범위를 어디까지 봐야하는지 등도 쟁점이다.
최근 서울고법 민사13부(재판장 조용구 부장판사)는 ‘간첩단 일심회’사건의 피의자 가족 구모씨 등이 신문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2008나14093)에서 “실명·사진보도로 인한 피의자 가족들의 정신적 피해에 대해 언론사가 배상해야 한다”고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재판부는 “보도의 대상자가 공직자이거나 공적인 관심사에 대해 광범위한 영향력을 보유하거나 어떤 공적인 논쟁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논쟁에 자발적으로 나선 자를 포괄하는 의미에서의 공적인물인 경우에 예외적으로 실명보도가 허용돼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다만 “공적인 인물이 아니더라도 범죄행위를 일반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사안에서 기사 작성상 범인의 신원을 밝히지 않고는 사실 특정이 곤란하거나 범죄의 재발방지 또는 범인체포의 필요성이 있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범인의 신원을 밝히는 것이 허용된다고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범인검거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실명·얼굴공개에 대해 엄격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서울고법 민사8부는 2002년 히로뽕 공급총책으로 잘못 묘사됐던 김모씨가 국가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2001나68046)에서 “피의자를 수배하기 위해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경우에는 범죄가 극히 중대하고, 조속한 검거가 요청되며, 피의자 검거에 필요한 충분한 노력을 다했음에도 검거하지 못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있어야 한다”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렸다. 같은 법원 민사13부는 최근 강도살인 혐의 등으로 지명수배됐던 신모씨가 방송사 등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 항소심(2008나55247)에서 “방송이 가지는 광범위하고 신속한 전파력 등으로 인해 방송 자체만으로도 피의자로 지목된 자나 그 주변 인물들이 입게 되는 피해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피의사실의 진실성을 뒷받침할 충분한 사실확인절차를 거쳐야 한다”고 판단했다.
◇ 사형제도 부정적 입장 많아= 한편 헌법학자들은 박준선 한나라당 의원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최근 “강호순 같은 범죄자를 단죄하는 수단은 사형제가 유일하며, 사형수들을 조속히 집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등 사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사형집행요구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입장인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66.7%에 해당하는 20명이 집행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를 밝힌 반면,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의견은 6.7%인 2명에 불과했다. 나머지 8명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또 사형제 존폐논란과 관련해서도 63.3%인 19명이 사형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한 반면, 폐지에 반대한다는 응답자는 13.3%인 4명에 불과했다. 7명은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김대환 서울시립대 교수는 “사형제도는 생명권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는 것으로 위헌이며, 사형제도의 위헌성을 개개의 사건과 연계해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한 반면, 민경식 중앙대 교수는 “사형집행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겠지만, 97년 이후 지금까지 집행이 한 번도 없었던 것은 법과 현실이 모순된 직무유기와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나라는 김영삼 정부시절인 지난 97년 23명의 사형수 집행 이후 단 한 차례도 집행이 이뤄지지 않아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현재 전국 교도소에 수감 중인 사형확정자는 58명이다.
엄자현 기자 mini@lawtime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