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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 보호가 우선인가… 피고인 방어권이 우선인가
피해자 보호가 우선인가… 피고인 방어권이 우선인가 법조계 이슈 된 '성폭력피해자 인적사항 유출' “성폭력 피해자의 개인정보보호가 우선인가 아니면, 피고인의 방어권이 우선인가?” 최근 성폭력 피해자의 개인정보 유출문제가 법조계에서 이슈로 떠올랐다. 강제추행 혐의로 1심 재판을 받던 피고인이 법원에서 열람·복사한 소송기록에서 찾은 피해자의 주소로 연락해 합의를 요구하자 충격을 받은 피해자가 검찰에 법원관계자들을 진정한 것이 발단이 됐다. 한 언론은 담당 판사에게 ‘무개념 판사’라는 자극적인 표현을 써가며 혹독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과연 그 판사는 무개념일까. 대다수 법조인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판사나 법원직원 개인의 잘잘못을 따질 문제가 아니라 ‘성폭력 피해자보호’와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 문제가 충돌해 발생하는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이에 따라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관련 규정을 정비하는 등 명확한 기준을 마련함으로써 제도적인 개선을 통해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 성폭법-형소법 충돌, 해결책 사실상 입법부재= 논란의 근본원인은 성폭법 제22조의 피해자의 신원 및 사생활 비밀누설금지 조항과 형소법 제35조의 피고인의 소송기록 열람·등사권이 충돌하고 있음에도 이 부분에 대한 대법원의 명시적인 판례나 입법적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은 탓이다. 성폭법은 피해자보호를 위해 성폭력범죄의 수사 또는 재판 관련 공무원이 피해자의 주소나 성명, 나이 등 피해자의 인적사항 등을 다른 사람에게 누설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이를 위반할 경우 5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형소법은 피고인의 방어권보장을 위해 소송계속 중의 관계 서류 또는 증거물에 대한 피고인과 변호인의 열람·등사권을 폭넓게 보장하고 있다. 신동운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피해자 보호의 이념과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이념은 어느 하나를 우위에 둘 수 없는 형소법상의 핵심 이념”이라며 “성폭력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피고인에 대해 공개할 것인지 여부와 관련해 양 법률이 일정부분 충돌하고 있음에도 사실상 해결방법에 대해서는 입법부재 상태여서 새로운 해결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성폭법상 피해자 인적사항 누설금지 ‘타인’ 범위도 논란= 성폭법과 형소법의 충돌과 관련한 또다른 핵심문제로 성폭법 제22조가 규정하고 있는 ‘타인(법문상 ‘다른 사람’)’의 범위에 피고인이 포함되는지 여부도 논란이다. 피고인이 타인에 포함된다고 해석하면 수사 또는 재판 관련 공무원은 피고인에게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누설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에는 알려줘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 손동권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성폭력범죄의 경우 피고인의 방어권보다 피해자의 프라이버시권이나 명예 등이 더 보호되어야 한다”며 “피고인이 피해자가 어떤 내용을 고소했는지, 어떤 진술을 했는지 등 범죄사실과 관련된 내용만 알면 충분한 것이지 자신의 방어권행사를 위해 반드시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성폭법상 타인의 범주에 피고인이나 변호인도 포함된다고 해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 고등부장판사는 “성폭력범죄의 경우 피해자의 합의노력은 상당히 중요한 양형인자임에도 불구하고 피고인에게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일률적으로 숨겨 합의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은 피고인의 방어권 측면에서 지나친 제약”이라며 “이는 형소법이 피고인과 변호인의 소송기록에 대한 열람·등사권을 방어권행사를 위한 핵심 권리로 폭넓게 인정하고 있는 취지와도 정면으로 배치된다”고 반박했다. 그는 “재판의 대립 당사자라고 볼 수 있는 피고인에게만 합의 등 제한적 목적내에서 인적사항 알려주는 것일뿐 일반에 널리 알려지도록 하는 것도 아니므로 피고인이나 변호인을 타인의 범위에 포함된다고 해석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 법조계, ‘피해자 보호-피고인 방어권’ 조화로운 제도개선 필요= 법조계는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피해자보호와 피고인의 방어권을 조화롭게 보장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을 통해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는 주문이다. 조병인 형사정책연구원 범죄연구센터장은 “피해자의 보호와 함께 실체적 진실 발견, 피고인의 방어권보장도 형소법상의 중요 이념인 만큼 개선입법을 통해 명확한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일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성범죄에 있어서도 가해자와 피해자의 화해를 통한 해결이 중요하지만 법관이 피고인과만 소통해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알려줄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법관이 미리 피해자측에 합의의향이 있는지 여부 등을 물어보고 피해자의 양해의사를 확인한 다음 피고인에게 인적사항을 알려주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또 “피해자를 특정해야만 합의금 등을 공탁할 수 있도록 하는 현행 공탁제도를 개선해 성폭력범죄의 경우 피고인이 피해자의 인적사항을 몰라도 사건명이나 사건번호만을 기재하고 합의금을 공탁할 수 있도록 한다면 피해자접촉으로 인한 2차 피해를 방지하면서도 피고인의 합의노력을 양형요소 등에 참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안했다. 지방의 한 고등부장판사는 “문제의 핵심은 피고인에게 합의기회를 제공하면서도 피해자와의 직접적인 접촉은 막는 데 있다”며 “예산 등의 현실적인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공익적 성격을 가진 중재변호사제도 등을 도입해 이들로 하여금 피고인을 대신해 합의 등 화해에 나서게 하는 방법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재홍 기자nov@lawtimes.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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