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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법관제 시행, 1심 강화·인사적체 해소 ‘일석이조’
고영한(61·사법연수원 11기) 법원행정처장이 7일 법원 내부전산망인 코트넷에 '2017년 법관 정기인사 운영 방향'이라는 공지를 올려 인사 패턴의 대대적인 변혁을 예고한 것은 1심 강화 등을 통해 재판의 신뢰성을 높이고 법관 개개인의 상황에 맞게 불필요한 인사이동을 최소화해 법관의 업무 연속성을 보장한다는 취지도 있지만, 평생법관제 시행에 따른 인사적체 가중과 지역법관 폐지로 발생한 지방의 재판 인력 부족을 해소하기 위한 고육책이라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경륜과 실력을 갖춘 시니어(senior) 판사들이 법원에 계속 봉직하는 것은 재판 등 사법서비스의 질과 공정성을 높일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조직의 긴장감을 떨어뜨려 혁신을 추진하는 데 걸림돌로 작용할 우려도 있어 이 같은 문제점이 발생하지 않도록 미리 대비하기 위한 복안이라는 것이다. ◇'인사적체, 지방 근무자 부족' 해결해야 = 법원이 원로법관제 도입과 판사들의 지방 근무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인사제도 변경을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 가운데 하나는 평생법관제 및 법원장 순환보직제의 정착으로 과거에는 법원장 임기를 마치면 법원을 떠났던 원로 법관들이 이제는 고등법원 재판부로 복귀해 재판업무를 담당하는 일이 자연스러워지면서 인사적체 현상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2012년 2월 법원장 순환보직제가 시행된 이후 고등법원 재판부로 복귀한 법원장은 그해 5명에 이어 2013년 2명, 2014년 7명, 2015년 5명을 기록했다. 올해는 무려 9명이 재판업무에 복귀했다. 법원장들이 고법 부장판사로 복귀하면서 그만큼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 폭은 줄어들게 됐다. 발탁 인사 폭이 줄게 되면 그만큼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기가 어려워진다. 원로법관제는 1심 강화와 함께 인사적체 해소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는 대안이다. 법원장 임기를 두 차례 마쳤거나 정년에 임박한 원로 법관들을 1심에 배치하면 그만큼 고등법원 부장판사 자리가 비게 된다. 승진 규모를 늘릴 수 있다는 말이다. 2014년 지역법관제도가 폐지되면서 발생한 지방 근무 인력 부족도 중요한 원인이다. '향판(鄕判)'이라고도 불렸던 지역법관들은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지 않고 대구·부산·광주권역 등 특정 고등법원 관내에서만 근무했다. 하지만 2014년 8월 허재호(74) 전 대주그룹 회장에게 일당 5억원짜리 노역 판결을 해 '황제노역' 논란을 일으킨 판사가 지역법관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며 세간의 비판이 집중되자, 대법원은 판사가 지방 특정권역에서 계속 근무할 수 있는 상한을 7년으로 제한하며 이 기간이 지나면 반드시 다른 권역으로 전보토록 하고 지역법관제를 폐지했다. 하지만 법관들의 수도권 쏠림 현상을 어느 정도 막아주던 지역법관제가 폐지되자 수도권으로 올라오는 법관들이 늘면서 지방에는 판사 부족 현상이, 수도권 법원에는 과밀화 현상이 나타났다. 법원이 지방근무를 하지 않도록 해줬던 고법판사와 서울가정법원 가사소년 전문법관은 물론 서울권 근무를 마친 지법 부장판사 등도 지방으로 전보해 경향 교류를 확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것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일선 법관 "올 것이 왔다"= 일선 법관들은 "올 것이 왔다"며 뒤숭숭한 분위기다. 수도권에서 계속 근무하길 원하는 판사들은 늘고 지방 근무를 자처하는 판사는 적어 경향교류 확대가 불가피한 것으로 예상은 했었지만 이렇게 빨리 올지는 몰랐다는 것이다. 특히 고등법원 부장판사 승진에 탈락한 고참 지법 부장판사 등도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 가족과 떨어져 살아야 하는 탓에 2차 경향교류를 앞둔 지법 부장판사의 줄사퇴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평생법관제 시행으로 사직하는 판사가 현격히 줄어들어 기존 인사 틀로는 더 이상 해결이 어렵기 때문에 지방근무 확대 등의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점은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현실화될지는 몰랐다"며 "특히 자녀가 중·고등학생인 여성 부장판사들은 지방 근무에 상당한 부담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은데다, 기러기 생활이 싫거나 이참에 더 늦기 전에 로펌 등으로의 전직을 고려해 사직하는 판사들이 예년보다 크게 늘 수도 있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부장판사는 "평생법관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자칫하면 판사들이 매너리즘에 빠져 딴 마음을 품어 또 다른 법조비리의 주인공이 되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기 때문에 인사 방식의 변화는 불가피하다"며 이해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다만 그는 법관이 자긍심을 잃지 않고 일할 수 있는 환경과 분위기를 만들어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로펌업계는 법관 인사의 변화로 법원을 떠나는 판사들이 늘 것으로 보고 영입 등을 위해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한 대형로펌의 대표변호사는 "로펌 입장에서는 인재 영입에서 선택의 여지가 넓어지게 되는 것"이라며 "훌륭한 인품과 실력을 겸비한 지법 부장판사급들이 많이 나온다면 적극적으로 영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원로법관제, 1심 강화에 도움" 기대감도= 한편 대법원은 원로법관제가 도입되면 1심 재판이 강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연륜있고 원숙한 60대의 법관들이 1심을 맡게 되면 재판에 대한 당사자들의 신뢰가 올라가고 승복률도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 부장판사는 "원로 법관들은 상대적으로 젊은 법관들보다 당사자들의 의견을 경청하고 조정하는 능력이 훨씬 탁월하다"며 "원로법관제도가 본격 시행되면 국민의 사법신뢰 제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원로법관은 차관급 대우를 받는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아닌 1심 판사로 돌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차량 제공 등의 혜택은 따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또 공직자윤리법상 취업 제한 규정도 적용되지 않는다. 퇴직 후 3년간 로펌이나 직무 관련성이 있는 기업체에 취업이 제한되는 것은 고등법원 부장판사 또는 검사장 등 차관급 이상의 고위 판·검사에게만 적용되기 때문이다. 대법원은 이 같은 맹점을 고려해 원로법관에게도 사실상 취업 제한과 동일한 제한을 가할 방침이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1심에 배치된 원로법관들이 취업제한 기간에 해당하는 3년 이상 근무하지 않은 상태에서 법원을 떠날 경우에는 취업제한이 유효하게 적용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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