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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과 정의
조정과 정의 -법률신문 제3168호 (2003년5월5일자) 월요법창- 법률신문 desk@lawtimes.co.kr 허 만 안산지원장 판결은 정의를, 조정은 평화를 목적으로 한다는 말이 있다. 실체법규에 의한 권리의 보장이 정의이고, 권리의 일부 포기를 수반하는 조정은 평화를 이끌어낼 뿐이라고 한다. 평화적 공존이 정의의 한 요소이긴 하지만 정의 그 자체가 아니라는 이 말은, 미국 Yale 법대 Fiss 교수가 법원의 조정제도를 비판하며 한 말이다. 분쟁 당사자가 스스로 합의하는 것은 좋지만, 법원이 나서서 조정·화해를 권유하는 것은 정의의 관념에 합치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학자답게 논리적이고 철학적이다. 이와 달리, 미국 Warren Burger 연방대법원장은, 분쟁을 겪는 당사자에게 신속하고 저렴하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면서 수용할 수 있는 치유 방안을 내리는 것이 정의라고 말한다. 법조계에 종사하는 실무가답게, 당사자의 고통과 비용의 최소화를 정의의 관념에 포함시킨다. 법률가의 임무를 사회적 의술에 비유하면서, 법원은 조정을 적극 이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과거에 대법원의 조정 활성화 방침을 둘러싸고 하급심 판사들 사이에 이와 유사한 논쟁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조정 실적이 쌓이면서 법원 내부에서 조정의 유용성에 대한 의문은 거의 없어졌다. 법원 밖에서도 대체로 조정제도의 효율성을 인정하는 편이다. 작년 7월부터 시행된 신민사소송법에 의한 민사신모델은 조정·화해의 적극적 활용을 전제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 법조계에서는 Burger의 정의관이 승리한 것 같다. 우리 판사들은 법정과 조정실에서, 상대방을 미워하면서도 분쟁에 휘말려 법원에까지 오게된 자신을 책망하고, 재판에 이기고 싶지만 빨리 분쟁에서 벗어나려는, 평범한 시민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법원이 나서서 조정하면, 적당한 선에서 합의하여 빨리 분쟁에서 벗어나려고 한다. 상대방과 인간관계가 회복되는 것까지 바라지 않는다. 조정에 성공하면 안도하고 만족해한다. 평화가 온 것이다. 법원 조정의 문제점을 지적한 Fiss 교수의 견해는 경청할 만하지만, 실무에 종사하는 대한민국의 판사로서는 쉽게 수긍할 수 없는 면이 있다. 조정에 성공하면 양쪽 당사자로부터 수고하였다는 감사 인사를 받는다. 판결을 선고하는 재판부가 원고와 피고로부터 동시에 인사받았다는 이야기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 적절한 예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이런 점도 법원 조정이 시민이 바라는 정의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조정제도의 취지가 정의 관념에 배치된다는 주장에는 동조하기 어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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